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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like music

Also Sprach Zarathustra


also sprach Zarathustra 라는 richard strauss 의 음악인데, 니체의 also sprach Zarathustra 의 교향시이다

아래는 그 음악이 쓰인 영화들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에서 아톰이 탄생하는 장면
디즈니에서 처음 보여줫다고 하는 음악과 장면의 조화가 정말 좋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등장. 아톰을 그렇게 생각한듯 하다
나는 어렸을때 이걸 보고 정말 좋아했었다

(내가 스스로 '저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렸을 적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있었기 때문에, 단지 좋아한다는 감정들로만 가득차 있어서
좋아함과 싫어함의 구분조차 없어서 그랬던것 같다 )

나는 항상 음악을 들을 때, 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만들었는지 찾아보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그 음악을 듣는데에서 느껴지는것이 진실한 나의 감정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보다, 그 음악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 감정과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그럴때 감정이 더 극대화 된다. 또한 그런 면에서도 곡을 해석해서 들려주는 지휘자의 연주보다 객관적인 지휘자의 연주-완전한 객관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곡을 들었을 때 지휘자가 의도한 바가 내게 오는지 안오는지에서 안오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가 더 좋은 것이다. 자신의 주관을 전달하려고 그것을 모두 집어 넣으면, 오히려 그 주관은 전달되지 못하고 감상자의 몰입조차 방해하게 된다. 그러한 면에서, 템포에의 조절에 있어서 지휘자는 항상 최대한의 객관과 최소한의 주관이 표현됨의 사이에서 곡예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감상하려는 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감정을 극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음악이 들려와도 실제로 들리는 것과 내게 들려오는 것은 다르다. 단지 곡의 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구간의 템포가 같더라도, 느끼는 감정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짐은 물론이다. 내게 올때는 나의 감정에 맞춰서 들려오는 것이다.